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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통일신라 시대 대국산성, 마르지 않는 연지의 비밀과 기술력

by 김춘옥 TV 2025. 3. 9.

시작하며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문화유적이 있고, 그중에서도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 대국산성은 통일신라 시대의 군사적 요충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곳에 수백 년간 물이 마르지 않는 거대한 구덩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국산성 정상부에서 발견된 이 거대한 구덩이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연지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해발 350m가 넘는 산꼭대기에 왜 이런 연지가 만들어졌는지,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1. 산 정상에서 발견된 거대한 구덩이, 그 첫 인상과 규모

대국산성 정상부에 오르면, 주변 풍경과는 사뭇 다른 독특한 광경이 펼쳐진다. 정상 한가운데,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원형의 거대한 구덩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직경이 약 7m에 달하고, 깊이는 3m가 넘는 이 구덩이는 성인 남성 두 명이 나란히 서도 충분할 정도로 넉넉한 너비를 자랑한다.

이처럼 거대한 구덩이가 산 정상에 있다는 점부터 의아한데, 단순히 자연적으로 생긴 지형이라기에는 너무 인공적인 흔적이 뚜렷하다. 땅을 깊게 파고, 주변을 돌과 점토로 정교하게 마감한 형태는, 분명 누군가의 의도와 목적이 담긴 인공 구조물이다.

일반적으로 산 정상에서 발견되는 구덩이라고 하면 봉화대나 방어시설 일부로 짐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은 특이하게도 땅속 깊이 움푹 파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사시사철 물까지 고여 있는 모습을 보면, 단순한 봉화대나 감시시설과는 거리가 멀다. 이 거대한 구덩이가 지닌 진짜 역할은 무엇일까.

 

2. 단순한 구덩이가 아닌, 물을 저장하는 연지의 역할

조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구덩이는 단순한 구덩이가 아니라 '연지'라는 시설이다. 연지는 쉽게 말해 성 안에서 필요한 물을 저장하는 저수 시설로, 대국산성에 설치된 연지도 바로 이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대국산성은 통일신라 시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군사 방어시설이다. 해발 350m라는 높은 곳에 자리한 만큼, 외부에서 물을 운반해 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고, 성 안에서 장기 거주하거나 방어전을 펼쳐야 할 때 물 부족 문제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국산성 내부에서도 가장 전략적 위치인 정상부에 빗물과 지하수를 모아둘 수 있는 연지를 조성한 것이다.

 

3. 연지의 독특한 구조와 기능

대국산성 연지는 단순한 구덩이가 아니라, 여러 기능과 기술이 결합된 복합시설이다.

  • 먼저, 연지 바닥과 벽면은 자연 흙이 아니라, 일부러 다져놓은 점토층으로 마감되어 있다.
  • 점토는 물을 통과시키지 않는 특성이 있어, 연지에 고인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한다.
  • 이러한 점토 방수층 덕분에 연지 안의 물은 사시사철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며, 쉽게 마르지 않는다.

또한 연지 안에는 물을 쉽게 퍼 올리기 위한 돌계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계단은 물이 가득 차 있을 때와 수위가 낮아졌을 때 모두 활용할 수 있도록 단계별로 높이가 다르게 설계되어 있다.

이런 디테일한 구조는 단순히 물을 저장하는 저수시설이 아니라, 실제 생활과 방어전 상황에서 실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선조들의 깊은 고민과 설계가 담긴 결과이다.

 

4. 산 정상에서도 물이 마르지 않는 비밀

대국산성 연지는 주변의 자연환경과 절묘하게 맞물려 있다. 우선 연지가 위치한 장소 자체가 산 정상에서도 약간 낮은 지점, 즉 빗물과 지하수가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는 지형에 자리하고 있다.

  • 빗물이 연지 주변 지면으로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연지로 흘러들어오는 구조
  • 지표수와 지하수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해, 일정한 수위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

게다가 20여 년 전 복원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철저한 고증을 통해 연지 바닥을 다시 점토층으로 마감한 덕분에, 현재까지도 물이 마르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첨단 장비를 이용한 조사 결과, 연지 주변 지하 100m 아래까지 물길이 이어져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연지가 단순히 빗물만 저장하는 게 아니라, 주변 지하수와도 연결되어 물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구조라는 것을 의미한다.

 

5. 군사적 요충지로서 연지의 중요성

대국산성은 단순한 성곽이 아니라, 주변 지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세워졌다. 적의 동향을 살피고, 유사시 주민들이 피신할 수 있는 피난처이자 방어 거점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식수 확보'이다. 전쟁 상황에서 외부로부터 보급이 차단되면, 물 부족은 성의 방어력을 크게 약화시킨다.

대국산성 연지는 이런 문제를 대비해, 성 내부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물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된 필수 시설이었다.

성 안에 고인 물은 주민들의 식수는 물론이고, 요리나 세척 같은 생활용수로도 사용되고, 화재 발생 시 초기 진화를 위한 소방수 역할도 겸했다.

 

6. 자연과 인간의 지혜가 결합된 연지

대국산성 연지는 자연이 주는 혜택을 적극 활용하고, 선조들의 지혜로운 기술력이 더해진 결과물이다.

빗물과 지하수를 자연스럽게 모아두는 위치 선정부터, 물이 빠지지 않도록 만든 점토 방수층, 수위 변화에 맞춰 활용할 수 있는 계단 구조까지, 모든 요소에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설계가 담겨 있다.

현대에도 고지대에서 안정적으로 물을 확보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통일신라 시대의 선조들은 자연환경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흐름에 맞춘 기술을 활용해 대국산성 정상부라는 높은 위치에서도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연지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대국산성 연지는 단순한 저수시설이 아닌, 자연환경과 인간의 기술력이 결합된 문화유산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마치며

대국산성 정상부에서 발견된 거대한 연지는 단순한 저수지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지혜가 결합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해발 350m라는 높은 위치에도 불구하고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것은, 자연의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맞춘 설계를 했기 때문이며, 이러한 선조들의 기술력은 지금까지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 외적을 방어하고, 주민들의 생존을 위한 필수시설로 활용되었던 대국산성 연지, 앞으로도 잘 보존되어 후대에 그 가치를 전해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