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매년 봄이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지역이 있다. 남해. 남쪽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이 고장은 계절이 바뀌는 풍경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곳이다. 따뜻한 기운이 퍼지기 시작하는 4월 초, 남해의 한적한 길을 따라 걷는 계획을 세웠다. 목적지는 남해 바래길 11코스. 서울에서부터 꽤 먼 길이었지만,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던 이유는 그 길 위에 있었다.
1. 남해에 도착하기까지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남해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약 4시간 정도 걸린다. 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는 동안 창밖 풍경도 점차 봄빛을 띠기 시작했다. 오후 6시를 조금 넘긴 시간, 남해에 도착했을 땐 해가 기울고 있었고, 바닷바람이 생각보다 따뜻하게 느껴졌다. 긴 이동으로 조금 지친 몸을 쉬게 하기 위해 터미널 근처 숙소에 머물렀다.
이 숙소는 오래된 모텔이었지만 청소 상태가 양호했고, 방도 널찍해서 하루 쉬어가기엔 충분했다. 가격은 주중 기준 5만원. 조용한 마을 분위기 덕분에 숙소에서도 잘 쉴 수 있었다.
2. 첫 끼니는 돼지갈비
숙소에서 짐을 정리한 뒤 저녁을 해결하러 나섰다. 남해 시내 중심가엔 오래된 음식점들이 여럿 있었다. 돼지갈비 전문점에 들어섰는데, 실내엔 현지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 중이었다. 숯불 위에서 고기가 구워지는 소리와 연기가 식욕을 자극했다.
여기서는 3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했다. 고기는 두껍지 않고 얇게 썰어 나왔으며, 숯 향이 깊이 배어 있어 한 점 한 점이 꽤 만족스러웠다. 불판 아래로 기름이 빠지도록 되어 있어 느끼하지 않았고, 쌈장과 마늘, 채소를 곁들여 먹는 방식도 부담 없었다. 식당의 인테리어는 소박했지만 오래된 집 특유의 정겨움이 있었다.
3. 시장 골목 식당에서 맞이한 아침
다음 날은 일찍 일어나 시장 골목 안쪽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가정식 백반 스타일의 정식 메뉴였는데, 가격은 1만원. 쑥국과 갓 튀긴 생선, 나물 반찬이 정갈하게 나왔고, 쟁반 하나하나에 세월의 흔적이 담겨 있었다.
특히 쑥국은 향이 진하고 부드러워 따뜻한 국물이 필요한 아침에 제격이었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시장 구경을 잠깐 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상인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직접 키운 채소와 과일을 파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4. 바래길 11코스 걷기 시작
아침 식사 후 본격적으로 바래길 11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출발 지점은 선구마을. 이곳은 작은 어촌 마을로, 붉은 지붕과 자갈이 깔린 해변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바래길 11코스는 선구마을에서 시작해 몽돌해변, 향촌마을을 지나 다랑이 마을까지 이어지는 약 6.5km 구간이다.
길은 대부분 완만했고, 표지판이 잘 정비돼 있어 길을 잃을 걱정 없이 걸을 수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마다 들리는 새소리와 파도 소리는 길 위에서의 동반자처럼 느껴졌다. 걷는 내내 주변 풍경은 연한 파스텔톤처럼 부드럽게 펼쳐졌다.
5. 걷다 마주친 마을들, 그리고 다랑이 논 입구
길을 걷다 보면 향촌마을을 지나게 된다. 이 마을은 들판과 마늘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 마을 주민들이 농사일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논과 밭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봄빛이 내려앉은 풍경을 감상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여유였다.
길 끝자락에 다다르면 드디어 다랑이 마을의 입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입구부터 경사가 조금씩 시작되는데, 올라가는 길마다 유채꽃이 양옆으로 피어 있고 그 사이로 바다가 반짝인다. 올라가면서 점점 넓게 펼쳐지는 바다 풍경은 사진으로 담기엔 부족할 정도로 생생하다.
6. 다랑이 마을, 노란 봄을 입다
다랑이 마을은 계단식 논으로 유명한 곳이다. 봄이면 이 논마다 유채꽃이 피어나 온 마을이 노란 물결로 덮인다. 높고 낮은 논이 층층이 이어지며 만들어내는 리듬감은 자연과 사람의 손길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마을 꼭대기에 있는 정자에 오르면 멀리 남해 바다가 보이고, 아래로는 유채꽃밭과 붉은 지붕의 집들이 내려다보인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이 흔들리고, 햇살이 닿는 곳마다 풍경이 살아 움직인다. 한참을 앉아 바라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7. 마을 아래에서 먹는 점심 한 끼
오랜 시간 걸은 후, 마을 아래에서 점심을 먹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작은 식당이 있었고, 메뉴는 멸치쌈밥과 해물전이었다. 남해 멸치를 쌈채소에 싸서 먹는 방식이었는데, 멸치 특유의 감칠맛이 쌈장과 잘 어우러졌다.
함께 나온 유자향 막걸리는 단맛이 적고 은은한 향이 남아 식사와 함께하기 좋았다. 해물전은 오징어, 새우가 큼직하게 들어 있었고,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큰 기대 없이 들어갔지만, 재료도 정직했고 음식의 맛도 만족스러웠다.
8. 민박집에서 보내는 조용한 밤
점심 후 마을을 둘러보다가 미리 알아본 민박집으로 향했다. 번화가에서 떨어져 있는 ‘넓은바다집’이라는 곳이었다. 민박은 전형적인 가정집 느낌이었고, 창밖으로는 바로 바다가 보였다. 가격은 1박에 6만원 정도였고, 방은 깔끔했고 냉장고와 샤워시설도 무난했다.
주인 어르신은 저녁 준비 중이셨고, 마당에선 삼겹살이 구워지는 냄새가 났다. 직접 기른 상추와 고추, 2년 묵힌 김치까지 함께 나왔고, 쌈장과 고기 조합은 정말 훌륭했다. 민박에서 이런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건 예상 밖의 즐거움이었다.
식사 후엔 근처 마을을 산책했고, 고양이들이 골목마다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밤이 되자 마을은 조용해졌고, 들리는 건 파도 소리뿐이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금세 잠이 들었다. 걷고 먹고 쉬었던 하루는 그렇게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마치며
남해에서 보낸 이틀은 특별한 이벤트나 화려한 계획 없이도 충분히 풍성한 시간이었다. 계절의 변화가 고스란히 담긴 길 위에서, 걷고 느끼고 맛보며 하루하루를 차분하게 채워나갈 수 있었다. 때로는 이렇게 단순한 여행이 더 깊은 기억으로 남는다. 다음 봄에도, 다시 이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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