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주작산 진달래 산행기 – 암릉과 꽃길을 동시에 걷다
시작하며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걷고 싶은 산이 떠오른다. 나에게 봄 산행의 첫 번째 선택지는 늘 주작산이다. 해남에 위치한 이 산은 봄마다 진달래가 만개해 능선을 붉게 물들이는 곳으로, 산악인들 사이에서 '진달래 명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년에도 이맘때쯤 주작산을 찾았고, 그 풍경은 지금도 기억에 또렷하다. 그래서 올해도 기대감을 안고 다시 이 산을 찾았다. 작년보다 진달래 개화 시기가 조금 앞당겨진 덕분에, 능선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연분홍 물결을 제때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산행은 수양리재를 출발점으로 삼아, 4봉과 7봉을 지나 위하산을 찍고 오소재까지 이어지는 종주 코스였다. 거리는 약 10km, 소요 시간은 약 6시간 40분으로 넉넉히 잡고 움직여야 하는 거리다. 하지만 거리에 비해 풍경과 감동은 그 이상이었다.
걸으며 마주한 진달래와 암릉, 조망 포인트,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가운 만남까지. 하루 동안 경험한 이 모든 풍경과 순간들을 정리해 본다.
1. 산행 코스 개요
해남 주작산의 대표 코스 중 하나는 수양리재에서 출발해 주능선을 따라 위하산을 지나 오소재로 하산하는 루트이다. 이번 산행도 이 노선을 기준으로 진행했으며, 중간중간 진달래 군락지와 암릉이 이어져 비교적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전체 거리 약 10km는 결코 짧지 않다. 특히 암릉 구간이 많아 이동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줄을 잡고 이동해야 하는 구간에서는 체력 소모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산세 자체가 위협적이거나 위험한 정도는 아니었고, 한 걸음씩 천천히 이동하면 누구나 완주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번 코스의 주요 경유지는 다음과 같다.
- 출발지: 수양리재
- 중간 경유지: 4봉 ~ 7봉, 진달래 군락지, 나폴레옹바위, 위하산
- 도착지: 오소재
전체 산행 시간은 총 6시간 40분이었으며, 쉬는 시간 포함이다. 한낮 기온이 높지 않아 땀이 과도하게 나지 않았고, 걷기 좋은 날씨였던 점도 도움이 되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구간은 중반 이후 등장한 진달래 능선이다. 작년에 비해 꽃 개화 상태가 훨씬 좋았고, 능선 양 옆으로 흐드러지게 핀 꽃들 사이로 걷는 기분은 마치 축제 한복판에 있는 듯했다. 바위 위로도 꽃이 올라온 모습이 인상 깊었고, 색감도 연한 분홍이 아니라 진한 자홍빛에 가까워 인상 깊었다.
2. 암릉 구간에서의 긴장감과 재미
주작산 산행의 가장 큰 특징은 암릉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중반 이후부터는 줄을 잡고 올라야 하거나, 바위 위를 조심스럽게 걸어야 하는 지점이 이어진다. 이번 코스에서는 그런 암릉 구간이 꽤 많았고, 예상보다 재미도 있고 긴장감도 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단연 나폴레옹바위였다. 바위 하나가 마치 시소처럼 양쪽으로 살짝 떠 있는 모습인데, 위에 올라서면 균형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실제로는 단단히 고정돼 있어 흔들리진 않지만, 시각적으로 주는 위압감이 꽤 있다.
그 외에도 로프를 잡고 오르거나 내려와야 하는 곳이 자주 나왔다. 장갑은 필수였고, 무릎 보호대도 꼭 챙겨야 할 아이템이었다. 암릉 바닥이 고르지 않아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는 일이 생기기 쉬웠고, 발 디딜 곳이 애매한 구간도 여러 번 나왔다.
하지만 이런 구간이 오히려 주작산의 재미를 만들어주는 요소였다. 적당한 스릴이 있었고, 중간중간 멈춰서 바라보는 조망도 훌륭했다. 무엇보다 암릉 위에서 바라본 진달래 능선의 풍경은 평지나 데크길에서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감동이었다.
산행 중반쯤엔 지쳐가는 시점에 인공 데크가 나타났는데, 그 순간만큼은 정말 고마웠다. 평소에는 흙길을 더 좋아하지만, 그날만큼은 안정적인 데크 바닥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산이라는 환경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순간이었다.
3. 진달래 군락지에서의 감탄
주작산의 진달래는 단순히 ‘꽃이 많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이번 산행에서 만난 진달래 군락은 한두 그루가 아니라, 능선 전체가 붉은 물결로 넘실거리는 수준이었다. 특히 햇살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색감이 달라져, 아침과 오후에 전혀 다른 풍경처럼 느껴졌다.
진달래가 가장 화려하게 피어 있던 곳은 4봉에서 7봉 사이였다. 산세가 조금 완만해지는 구간이면서도 주변 시야가 열려 있어, 양쪽으로 진달래와 바다가 동시에 보이는 조망이 인상 깊었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해도 액자처럼 잘 나올 정도였다.
꽃잎이 바람에 흩날릴 때는 그야말로 몽환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흙길 위로 진달래 꽃잎이 떨어져 양탄자처럼 깔려 있었고, 걷는 내내 꽃향기가 은은하게 퍼졌다. 함께 산행하던 사람들도 연신 “와”라는 감탄사를 터뜨릴 정도였다.
그뿐만 아니라 바위 틈 사이에서 홀로 자란 진달래도 여러 번 눈에 띄었다. 뿌리를 내리기 힘들 법한 돌 위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 모습은 어떤 말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꽃을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 한 켠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중간중간 사진을 찍기 위해 멈췄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잠깐씩 대화도 나눴다. 대부분 “작년보다 훨씬 화려하다”는 반응이었고, 어떤 분은 진달래 보기 위해 서울에서 당일로 내려오셨다고 했다. 산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끌어당길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4. 위하산을 지나며 만난 노을
산행이 중후반으로 접어들 즈음, 위하산 구간에 도착했다. 이곳은 공식 정상은 아니지만, 조망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실제로 올라서니 주작산 능선이 한눈에 펼쳐졌고, 저 멀리 두륜산의 봉우리들과 해안선까지 시야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건, 저녁 노을이 서서히 지기 시작하면서 진달래 능선이 붉게 물들어가는 장면이었다. 해가 산 너머로 기울기 시작할 즈음, 연분홍빛 진달래는 훨씬 더 짙고 따뜻한 색을 띠며, 이전과는 또 다른 풍경을 연출했다.
이때쯤엔 피로도 누적되고 다리도 무거웠지만, 그 풍경 하나로 다시 걸을 힘이 생겼다. 사람들은 저마다 조용히 앉아 사진을 찍거나, 말없이 경치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바람 소리와 새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오히려 더 특별한 순간처럼 느껴졌다.
위하산 이후부터는 하산길이 조금씩 완만해졌다. 길이 데크로 바뀌는 지점이 나오고, 땅이 고르게 정비된 구간도 많아지면서 발걸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다만, 마지막 봉우리를 하나 더 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예상치 못한 오르막에 당황하기도 했다.
이 봉우리를 지나면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된다. 이쯤 되면 마음이 꽤 느슨해지고, “다 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자칫하면 발을 헛딛기 쉽다.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5. 오소재 도착, 그리고 마무리
오소재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 22분이었다. 약 6시간 40분 동안의 산행을 마무리하는 순간이었다. 걷는 도중에는 “언제 끝나나”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막상 아스팔트를 밟고 나니 왠지 모를 뿌듯함과 여운이 남았다.
원래는 오소재에서 택시를 타고 복귀할 계획이었지만, 산 중턱에서 우연히 마주친 지인이 차를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예상치 못한 ‘지인 찬스’를 쓰게 되어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이런 우연한 만남도 산행의 재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하산 후, 발바닥엔 피로가 가득했고 어깨와 무릎에도 적당한 통증이 남아 있었지만, 몸과 마음은 이상하게도 가벼웠다. 산에서 내려오며 받은 위로와 정서적 환기가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 기분이었다.
산행 중 나눴던 대화, 힘들어하며 밧줄을 잡던 순간, 그리고 진달래 사이에서 찍은 수많은 사진들까지. 모두 하루치 기억으로는 아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알찼다. 단순히 ‘꽃이 예쁜 산’이 아니라, 자연과 걷기, 사람과 만남이 어우러진 하루였다.
마치며
올해 주작산 산행은 작년보다 한결 더 인상 깊었다. 진달래는 더 짙고 넓게 피었고, 암릉 구간도 조금은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산이라는 공간에서 여러 감정을 마주할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산행을 마친 뒤에도 그 풍경은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다시 그 능선을 걷는다면, 아마도 또 다른 풍경과 감정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주작산은 그만큼 한 번으로는 부족한 산이다.
내년 봄, 이 길을 다시 걸을 수 있다면 그때도 분명 오늘을 떠올릴 것이다.
#해남주작산#진달래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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