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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도락 여행

회 나오기도 전에 취한다… 녹번 송도회집 25,000원 가성비 리뷰

by 김춘옥 TV 2025. 3. 27.

시작하며

요즘 같은 물가에 1인당 25,000원으로 해산물, 회, 국물 요리까지 코스로 먹을 수 있다는 말이 믿기 힘들 수도 있다. 심지어 서울 한복판, 그것도 은평구 녹번역 근처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런 집이 실제로 존재하고, 그것도 무려 32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노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겉모습은 특별할 것 없이 조용하고 소박하지만, 한 번 들어가 보면 그날 하루는 잊지 못할 만한 경험이 된다. 인천 송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송도회집’. 회보다 안주가 더 기억에 남는, 그런 집이었다.

 

1. 위치와 외관에서 느껴지는 세월

이 집은 녹번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몇 정류장 더 들어가야 한다. 골목 안쪽에 위치해 있어서 처음 찾는 사람은 다소 헤맬 수도 있다. 간판은 달려 있지만 불은 꺼져 있고, 외부 조명도 거의 없는 수준이라 잘 보고 가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입구도 눈에 띄는 간판 대신 낡은 나무문과 작은 유리창이 전부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분위기는 확 달라진다.

작은 가게 안에는 오래된 나무 테이블이 놓여 있고, 술잔과 그릇이 정돈된 모습에서 가게의 성격이 느껴진다. 화려하진 않지만 손님 맞을 준비는 잘 되어 있는 느낌. 손님 대부분은 동네 주민처럼 보였고, 각자 편하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혼자 온 사람도 있었고, 둘셋씩 앉아 조용히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 기본 상차림부터 센 안주의 연속

자리에 앉자마자 나온 건 회가 들어간 김밥이었다. 이게 첫 스타트부터 의외였다. 회를 김밥에 넣어 나오는 집은 흔치 않은데, 식감과 감칠맛이 잘 살아 있었다. 김밥만으로도 안주가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매콤새콤한 홍어무침이 함께 나왔다. 이 조합이 꽤 훌륭했다. 김밥 한 점, 홍어무침 한 젓가락으로 입이 확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그다음으로 나온 건 멍게와 홍합이 함께 담긴 접시. 양도 넉넉했고, 재료 상태도 좋았다. 여기서부터 진짜 술이 당기기 시작했다. 생굴도 이어서 나왔는데 크고 통통한 굴이 입안 가득 찼고, 함께 곁들여진 시래기 반찬은 손이 계속 갈 만큼 집밥 같은 맛이었다. 안주는 계속 나오고, 소주는 벌써 한 병이 반쯤 사라졌다.

 

3. 메인은 숙성회, 하지만 막장이 더 강렬했다

한참 안주로 분위기를 달구고 있을 무렵, 드디어 메인인 회가 나왔다. 이날 제공된 회는 두툼하게 썰어낸 숙성회였고, 색감과 선도가 꽤 괜찮았다. 생선 종류는 계절이나 날에 따라 바뀌는 것 같았지만,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구성이었다. 단순히 숙성만 한 게 아니라, 자르기나 담음새에서도 사장님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런데 회보다 더 인상 깊었던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이 집 막장이다. 일반적인 쌈장과는 확연히 다른 맛이었고, 된장을 베이스로 고소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이 있었다. 회 한 점을 막장에 살짝 찍어 깻잎에 올리고, 시래기 반찬을 곁들이면 한입에 모든 맛이 완성된다. 별다른 밥이 없어도 충분히 든든한 느낌이었다.

회가 뒤늦게 나왔음에도, 이미 배는 어느 정도 찬 상태였다. 그런데도 손이 계속 가는 건 음식이 맛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술안주로서의 조합이 훌륭해서이기도 하다.

 

4. 추가 주문하면 또 다른 안주가 펼쳐진다

함께 간 친구가 1인분을 추가하자, 아까는 없던 새로운 안주가 또 나왔다. 이번엔 청어회였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특징인 청어는 앞서 먹었던 숙성회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줬다. 가격은 그대로인데도 메뉴 구성은 매번 달라지는 듯해, 어떤 날엔 또 어떤 안주가 나올지 기대하게 만든다.

이쯤 되면 상 위는 이미 한상 가득이다. 안주는 차고 넘치고, 술잔은 바쁘게 오가고,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무르익는다. 더 이상 뭘 주문하지 않아도 충분한 구성인데, 사장님은 지리탕까지 내어주셨다.

맑고 개운한 지리탕은 안주라기보다 해장용으로 더 가깝게 느껴졌고, 식사를 마무리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국물이었다. 생선살도 충분했고, 국물 색도 맑고 투명해서 속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마치며

송도회집은 눈에 잘 띄지 않고, 찾아가는 길도 쉽지 않지만, 한 번 가보면 왜 동네 주민들이 꾸준히 찾는지 바로 알 수 있는 곳이다. 겉보기에는 오래된 그냥 그런 집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음식 하나하나에 담긴 정성과 배려가 남다르다.

특히 1인당 25,000원이라는 가격에 이 정도 안주 구성과 숙성회, 국물 요리까지 모두 포함된다는 건, 단순히 저렴한 가격 이상이다. 흔히 말하는 가성비라는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혼술하러 가도 좋고, 친구와 둘이 앉아 조용히 한잔하기에도 좋은 곳. 소문 없이 오래된 이유가 있는, 그런 회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