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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강남 둘레길 걷기, 조선 왕족의 역사와 궁중음식의 전통을 잇는 곳

by 김춘옥 TV 2025. 3. 8.

시작하며

강남 하면 흔히 떠오르는 것은 높은 빌딩들과 세련된 상업 공간이지만, 그 사이를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수백 년의 역사를 품은 공간을 마주할 수 있다.

강남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광평대군 묘역과 종택이 바로 그런 곳이다.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 이여의 묘소와 그 후손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이어져 내려온 이 공간은 강남 도심 속에서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조선시대 명문가의 흔적과 후손들이 이어온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본다.

 

1. 강남 한복판에서 만나는 조선 왕족의 묘역, 광평대군 묘역

강남이라는 지역을 떠올리면 대부분 화려한 상업지구, 최신 트렌드가 반영된 건물들과 도심 속 빼곡한 주택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강남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500년이 넘는 역사를 품고 있는 공간이 있다. 바로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 이여의 묘역이다.

광평대군은 조선 왕족으로서 단명한 비운의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무덤은 후손들의 정성 어린 관리 덕분에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왕족의 묘역이 도심 한복판, 그것도 강남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인데, 그만큼 이 장소는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크고, 후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보호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남아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묘역에는 광평대군뿐만 아니라 후손들의 묘소도 함께 자리하고 있어, 한 집안의 역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장소로 자리 잡고 있다. 후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이 묘역을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며, 조상의 뜻을 잇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최근 몇 년간 기상이변과 폭우, 태풍 등으로 인해 묘역의 환경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특히 수백 년 된 소나무들이 강풍에 쓰러지거나 가지가 부러지는 피해를 입어, 자연재해 앞에서 후손들은 깊은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광평대군의 21대 후손인 이병 씨 또한 후손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더 세심한 관리와 보존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후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후 변화와 도시 개발 등의 요인으로 묘역을 온전히 보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손들은 조상의 역사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의무이자 후세대에 전해야 할 정신적 유산이라고 여기며 묘역을 지키고 있다.

 

2. 조선 명문가의 삶이 깃든 500년 종택, 역사와 일상의 공존

광평대군 묘역과 함께 주목할 만한 곳이 바로 인근에 자리한 종택이다. 종택은 단순한 옛집이 아니라, 광평대군 후손들이 대를 이어 생활해온 공간이자, 가문의 정신적 중심지라 할 수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명문가의 주택 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상당히 높은 공간이다.

종택은 약 500년 전 지어져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원래 규모는 9칸 한옥으로, 당시 민가로서는 상당히 큰 규모를 자랑하는 주택이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일부는 소실되었지만, 남아있는 부분만으로도 조선시대 양반가의 생활상과 건축 양식을 생생히 보여준다.

특히 정침(본채)과 별채, 대문채 등 각각의 공간은 당시의 생활 방식과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반영한 구조로,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가문의 정체성과 생활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현재 종택에는 광평대군 후손이 실제로 거주하며, 종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후손은 종택과 함께한 시간만큼이나 가문의 역사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지니고 있으며, 대를 잇는다는 의미가 단순한 혈연의 계승을 넘어, 가문의 정신과 전통을 후세에 전하는 일임을 깊이 깨닫고 있다.

 

3. 역사적 가치와 함께 후손들이 지켜온 선조들의 흔적, 비석과 기록들

종택 앞마당과 인근에 자리한 비석들은 단순한 석물이 아니라, 광평대군 가문의 역사와 후손들의 삶이 기록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각 비석에는 조상의 공적과 삶의 기록, 그리고 후손들의 존경과 애정이 담겨 있다.

특히 석종대라는 비석은 후손들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비석에는 광평대군 후손 중 한 분이 임금을 제대로 모시지 못했다는 깊은 죄책감에 스스로 곡기를 끊고 세상을 떠났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충신의 삶과 죽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 기록은 후손들에게도 가문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기록과 비석들은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후손들이 조상의 삶과 가문의 정신을 되새기고, 이를 현재와 미래 세대에 전하는 중요한 연결고리로 자리하고 있다.

 

4. 대대로 이어온 궁중음식의 전통, 종가의 음식문화

광평대군 후손들은 단순히 공간과 기록만 지켜온 것이 아니라, 조상 대대로 이어온 궁중음식의 전통도 지금까지 계승하고 있다.

종택에서 전해지는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궁중 보쌈김치이다.

궁중 보쌈김치는 단순한 김치가 아니라, 왕실과 명문가에서 대대로 이어온 내림음식으로, 재료 준비부터 담그는 과정까지 정성과 손길이 담긴 음식이다.

배추 속에 새우, 낙지 등 해산물과 밤, 은행, 버섯 등의 재료를 넣고, 숙성 과정을 통해 깊은 맛을 내는 방식이다.

단순한 발효 음식이 아니라, 조상들의 지혜와 손맛이 오롯이 담긴 가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종부였던 김명선 씨는 이러한 궁중음식을 호텔 주방장조차 따라하기 어려운 섬세한 손맛으로 재현해내며, 대대로 이어온 전통을 지키고 있다.

이 음식문화는 단순한 가정 요리가 아니라, 가문의 역사와 정신을 담은 상징적인 문화유산으로 자리하고 있다.

 

5. 500년 종가를 지켜온 후손들의 책임과 자부심

광평대군 후손들은 단순히 조상들의 흔적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그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종택은 단순히 옛집이 아니라, 가문의 정체성과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이며, 그 안에서 이어지는 제례와 음식문화 역시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후손들의 책임과 자부심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몇 년 전, 종부가 지문을 찍으려다 손가락 지문이 닳아 사라진 일화는 이 집안이 지나온 세월과 후손들의 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종가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집을 보존하는 일이 아니라, 조상의 정신과 후손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이를 후세에 전하는 큰 의미를 갖는다.

 

마치며

강남 한복판,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만나는 500년 역사의 흔적은 단순히 오래된 공간을 넘어, 한 가문의 정신과 후손들의 정성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광평대군 묘역과 종택은 강남이라는 현대적 도시 풍경 속에서도 조선시대 명문가의 흔적과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강남 둘레길을 따라 걷다가 우연히 마주할 수 있는 이곳은,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조선 왕족의 역사와 후손들의 이야기를 전할 것이다.